#03. 작은 팀에서 일한다는 의미

2022. 9. 22. 00:27Work Tales/팀 블루박스

 

 팀블루박스에 처음 합류했을때 구성원은 단 3명 뿐이었다. 

 전체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작가 한 명, 공간의 이미지를 가꿔내는 디자이너 한 명, 그리고 장치를 개발하고 인테리어를 도맡고 전체를 디렉팅하는 프로듀서 대표님. 여느 시작이 그러하듯 자그마한 팀은 어떠한 규칙도 없이 눈 앞의 업무를 쳐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입구로 들어섰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팀블루박스는 방탈출제작을 기반으로 하는 컨텐츠 제작팀이다. 이미 2개의 매장을 성공적으로 오픈하여 운영하고 있던 대표님과 테마 리뉴얼 경험을 수차례 가지고 있는 작가님, 그리고 영화판에서 미술팀으로 있던 디자이너분이 함께 일을하고 있었다. 시작하는 모든 작은팀들이 그러하듯 우리 팀은 매 순간이 고비였다. 제작을 위한 어떤 명확한 가이드나 규칙은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모여서 긴 회의를 마치고나면 다음날은 다시 새로운 날이 되는 듯했다. 쉴새없이 바뀌는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뼈대를 쌓아가기 위해 작가님은 매일 머리에 쥐가 난다 했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디자이너는 매일같이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아 나섰다. 제작팀의 회의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한발씩 그 안에 다가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사실 작더라도 팀단위로 일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기쁜일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혼자 일하기 일쑤고, 디자인이 아닌 다른 파트라 할지라도 워터폴조직에서 일한다면 협업의 본질을 느낄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협업의 본질은 상호간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1+1이 2가 아니라 3이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이 그렇다. 

 

 팀단위로 일한다는 것, 협업으로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정말 시너지만을 발생시킬 수 있을까? 좀 더 들여다보면 삶속에서는 더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파워풀한 리더가 독단적으로 모든 결론을 정리해 둔채 일하거나 워터풀 방식으로 이전 파트와 다음 파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사람이 제시하는 방향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이 뿐일까 각기

다른 포지션postiion 에서 다른 백그라운드background를 가진 채 대화를 나눌때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라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회의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수 많은 빠르게 성장해나가는 기업들이 채용공고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반드시 기입해두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우리는 대체 대화를 어떻게 해왔던 것일까?

 

 회의를 한 번씩 진행할 때마다 겪는 문제점은 사실 너무도 황당한 것들이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

 

 팀원들은 각자가 아이디어를 정리해와 짧게 아이디어 스피치를 진행한다. A는 이러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B는 또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각자의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뼈대가 될 만한 요소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공감하는 지점도 있었지만 괴리가 생기는 지점이 더 많았다. 좋다고 느끼는 요소가 사람마다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좋은지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페이지 위에서 그어지지 않는 선은 결코 만날 수 없다. (we had to be on the same page)

 

 방탈출을 제작한다는 것은 한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가지고 오로지 플레이어들만을 위한 뮤지컬 무대처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상상으로 그려내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사물의 위치와 각자가 떠올리는 인테리어의 모습, 연출되는 이미지와 배경에 깔리는 음악의 분위기까지 같은 시나리오를 읽어준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은 모두 다른 결과값을 상상해냈다.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다. 그렇기에 다른 배경을 가지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팀원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과 당신이 설명하는 내용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나는 당신의 연출방식이 전혀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등의 피드백을 서로에게 했다.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나누는 회의들이 종종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팀이 조금 더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기를 바랬다.

 

 

 

 

 우선,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 팀원들의 MBTI를 좀 들어보니 대부분 N성향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였을까, 각자가 표현하는 말의 앞과 뒤에는 괄호 ( )가 많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연출의 기본값이 설명에 생략되어 있다거나, 인테리어의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종종 '내 머릿속의 모습을 꺼내보여주고 싶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